Daegu Literature Museum
씨뿌린 사람들, 사조사,
1959
백기만은 1902년 5월 12일 대구 남산동 82번지에서 출생했다. 아호는 목우이다. 1915년 대구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7년 대구고보에 진학하였다. 1919년 대구고보 3학년 재학중 3・1만세운동에 연좌되어 피검, 징역 1년을 언도 받았으나,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복심원에서 3년 집행 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 났다. 1920년 상화의 종형 되는 이상악 등의 학비 지원을 받아 도일, 와세다대 제1고등학원을 거쳐 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며, 이시절 『금성』 편집자이자 동인인 양주동을 만났다. 1923년 『개벽』지에 「가엾은 청춘」, 「예술」, 「고별」 등 3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활동을 하였다. 그해 양주동, 유엽 등과 『금성』을 발간 하였으며, 고월 이장희를 『금성』 동인으로 추천하기도 하였다. 1926년 한국 최초의 『조선시인선집』을 발간하였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백기만은 반민특위조사위원 겸 적산가옥처리위원으로 활약하는 한편 대구시보 주필, 대구일보 상무이사, 영남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50년에는 상화의 백형인 이상정의 유고집 『중국유기』, 1951년 상화와 고월의 유작을 엮어 『상화와 고월』을 간행하였다. 또한 1955년에는 지금도 대구 시민들이 즐겨 부르는 유재덕 작곡의 「대구시민의 노래」를 작사하였다.
백기만 편의 『씨뿌린 사람들』은 1959년 경북작고예술가 평전으로 상화와 고월뿐 아니라 대구 경북 예술인의 평론이 실린 평론집이다. 이 책에는 상화와 고월, 현진건, 이육사, 오일도, 백신애, 김유영, 이인성, 김용조등 시인 4인, 소설가 2인, 화가 2인, 음악가 1인, 영화감독 1인의 평전이 실려 있다. 백기만은 『씨뿌린 사람들』을 간행하면서 도입부에 '시인은 씨뿌리는 사람이다. 그 씨는 봄을 부르고 봄이 오면 꽃이 피는 것이다. -모든 예술가는 마침내 시인으로 귀착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문(文은) 인(人이)다」 라는 말이 있으니 이 말을 넓히면 「예술은 인격의 표현이다」 라고도 될 수 있는 것이니 한마디로 하여 「위대한 예술은 인격의 소감이다」라고 하여 둘까합니다. 본서는 값있는 예술가들의 평부인 만큼 인생을 정리하고 인생을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누가 읽어도 많은 영양소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 바입니다.'라고 후기를 통해 향토문화와 책에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